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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과예술

작성자
남계 [작성일 : 2006-04-07 15:16:01 ]  
제 목
죽음의 화가. 에드바르트 뭉크 지옥에서 나온 그림들을 그리다

에드바르트 뭉크( Edvard Munch, 노르웨이, 1863-1944 )
- 죽음의 화가. 에드바르트 뭉크 지옥에서 나온 그림들을 그리다 

 

 

 The Scream 1893
 

인류 파멸에 대한 징조 - 절

 

에드바르트 뭉크라는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도 이 그림은 기억한다.

그만큼 강렬한 인상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 그림을 통해 앞으로 다가올 두 차례의 세계 대전과

자기 예술에 대한 일련의 모욕들에 대한 뭉크의 징조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 두 차례의 전쟁과 인류의 시련이 지난 뒤의 평가이긴 하다.

 

뭉크 자신은 이 그림을 두고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두 명의 친구와 거리를 걷고 있었다. 해가 지고 있었다. 하늘이 핏빛으로 붉게 물들고 있었다.

그때 나는 한 줌의 우울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멈춰 섰고 너무나 피곤해서 난간에 기대었다.

흑청색의 피오르드와 도시 너머에는 불로 된 피와 혀가 걸려 있었다.

내 친구들은 계속 걸었으나 나는 불안에 떨며 멈춰 섰다.

그리고 자연을 통해 울리는 커다랗고 끝이 없는 비명 소리를 느꼈다.

 

  뭉크는 자신의 인생을 바탕으로 자신이 느끼고 있는

불안과 공포를 구체화시킴으로써 상징적으로 표출하고자 했다.

이 때 제작된 <인생의 춤>, <절규>, <흡혈귀>, <죽음의 소녀> 등은 뭉크 자신만의 개성으로

여타 상징주의 화가들을 사로잡기에 이른다.

그의 그림들은 마치 지옥의 유황불에서 막 건져올린 듯 흐물흐물하고,

사람들의 눈동자는 총기를 잃고 퀭하다.

마치 그림 속에서 금방이라도 기괴한 비명을 지르며 캔버스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은 분위기이다.

뭉크의 이미지들은 화면에서 현실 공간에서 부유하며 떠다니는 무척추동물을 연상케 한다.

북구 스칸디나비아 반도 특유의 차갑지만 빛 바랜 듯한 붉은 색은

마치 오로라의 극광처럼 너울거리며 현실공간조차 환상의 환영을 바라보는 듯한 충격을 준다.

에드바르트 뭉크(1863-1944)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인상들이란 대체로 이와 유사하다.

그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인간의 우수에 찬 모습들은 앞서 묘사한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그의 개인적 병력이 이런 유형의 그림을 만들어 내도록 했을 것이다.

 

 

Ashes 1894 
 
 
 
 
 
 
Death in the Sickroom 1895
 
 
요람을 지키는 검은 천사들과 함께 한 유년 시절
 
북구의 신화와 전설을 보면 유난히 음습하고,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오랜 시간 동안 피요르드와 빙하들로 둘러싸여 있고 오로라가 밤도 낮도 아닌
북구의 하늘에 빛의 그림자를 드리우는 곳이기도 하다.
바로 이런 곳에서 태어난 뭉크는 회화라는 양식을 통해 자신의 인생과 질병을 표현한 화가이다.
이를 위해 그는 강렬한 색채와 형태의 왜곡을 일삼았다.
그는 시대의 불안과 공포, 하지만 그 안에서 또 다른 희망을 추구했던 세기말의 천재 화가였던 것이다.
 
뭉크의 집안은 대대로 성직자, 문인, 관료, 장교가 있었고 이들 중에는 몇 개의 직업을 겸한 사람도 있었다.
 ‘뭉크'는 승려를 뜻하는 말로, 그의 할아버지는 고위의 성직자였고
아버지 페테르 크리스티안 뭉크(Peter Christian Munch, 1817~1889)는 노르웨이의 군의관이었으며
나중에는 관료 봉급에 보태기 위해 당시 도시였던 크리스티아니아(오늘날의 오슬로)근교 빈민가의 의사였다.
그의 집안은 노동자가 많이 살던 그 일대에서는 거의 유일한 관료집안이었다.
종교적 성향이 강했던 그의 아버지는 1861년 44세의 나이로 23세였던
로이라 카트리네 비욀스타와 결혼한다.
여기에서 1862년 딸 소피에가 태어났고 1863년 12월 12일에는 에드바르트 뭉크가 태어났다.
 
나의 모친의 가계는 농부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들은 강한 의지의 소유자들이었다.
그러나 이미 그 뿌리까지 어지럼병을 일으키는 박테리아에 감염되어 있었다.
당신도 알다시피 아버지의 선조들은 천재적인 소질을 갖춘 시인었지만
이들도 이미 타락의 징조를 보이고 있었다. 나는 태어났을 때 곧 죽을 것 같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서둘러 세례를 받게 했다. 그때 이미 어머니는 죽음의 씨앗을 몸 안에 갖고 있었다.
6년 후 어지럼병이 다섯 어린 아이들에게서 어머니를 앗아갔다.
그렇게 병과 정신착란과 죽음이 마치 검은 천사처럼
내 요람을 지키고 있었고 일생 동안 내내 나를 따라다녔다.
 
아버지는 우리들에게 아버지와 어머니의 역할을 동시에 하려 애썼다.
그러나 아버지는 우울하고 신경질적이 되었다.
부담에 겨워 핼쓱해졌고 주기적으로 종교적인 발작을 보였는데,
그것은 하루 종일 방 안에서 이리 왔다 저리 갔다 하며 신을 불러대는 광기에 가까운 것이었다.
나는 너무나도 일찍 이 지상의 삶의 비참함과 위험요소들을 알아버렸고
또 죽음 이후에 오는 삶과 죄진 인간을 기다리는 지옥의 영원한 고통에 대해 들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이러한 종교적 발작이 일어나지 않았을 때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우리와 장난치고 놀며 우리에게 동화를 들려줄 수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로서는 아버지가 우리에게 벌을 줄 때 그 영혼의 고통을 감내하기가 두 배나 더 어려웠다.
나는 아버지의 신경증적인 광포함을 그대로 물려 받았다.   <에드바르트 뭉크>
 

The Dance of Life 1899-00 
 
 
The Dead Mother   1899-00
 
 아버지 크리스티안과 어머니 레우라의 금슬은 매우 좋은 편이었다.
크리스티아니아 시절 뭉크의 형들 안드레아스(1865~1895), 로이라(1867~1926), 잉게르(1868~1952)가 태어났다.
죽음이 임박한 어머니는 제일 위의 두 아이 소피에와 에드바르트에게 작별을 고하였다.
이것은 소년 에드바르트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뭉크의 모친은 8년간의 결혼생활 끝에 결핵으로 죽었을 당시 30세였다.
그녀는 일곱 살의 소피에, 여섯 살의 에드바르드, 세살의 안드레아스, 두 살의 로이라,
11개월 된 잉게르 등 어린 아이 다섯을 두고 갔다.
뭉크의 모친은 자신이 잉게르를 출산하기 전에 자신이 죽을 것을 예상하고
아이들에게 작별의 편지를 써놓았다고 한다.
뭉크가 여섯 살의 나이로 경험한 어머니의 죽음은 최초의 크나큰 상처였다.


Evening on Karl Johan 1892
 
 
 Night in St. Cloud 
 

Vampire
 
 
뭉크는 요람에서부터 죽음을 안 사람이라고 스스로 말하곤 했다.
그는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누이의 죽음마저 지켜봐야 했다.
정신적으로 나약한 형제들, 신경질적인 아버지.
유년 시절의 어두운 기억은 뭉크의 작품에 고스란히 투영된다.
그의 삶이 불행하고 어두웠던 만큼 그의 작품이 갖는 주된 테마는 죽음과 사랑이었다.
뭉크는 자신의 생애 동안 죽음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으로 끊임없는 갈등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뭉크를 절망의 화가라고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뭉크의 그림에는
절망적인 인간의 모습만이 그려져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인간의 원초적인 모습을 통해 평생 동안 끊임없는 생명을 추구하고자 했다.
그의 절망 속에는 언제나 희망이 예견되어 있었다.
노르웨이 태생의 작가였지만 뭉크는 후진적인 19세기말의 북유럽을 탈피하고자 했다.
그 결과 독일 미술의 영향을 크게 받았으며, 그 또한 독일의 미술, 특히 표현파에
깊은 영향을 끼치는 등 독일에서 화가로서의 꽃을 활짝 피웠다 

 
 
 Self-Portrait with Burning Cigarette 1895
 
 
 
내게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일종의 병이요, 도취이다. 그 병은 벗어나고 싶지 않은 병이요,
그 도취는 내게 필요한 도취이다. <에드바르트 뭉크>
 
Edvard Munch (1863-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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